낭 · 만 浪·漫
@stargazer_commi 님 커미션

나뒹구는 시체의 바다 사이 검은 양산을 들고 서 있는 예쁘장한 박쥐.
사람들은 종종 그를 용의 머리와 박쥐의 치齒를 가진 야차라 부르곤 했다.

 
ㅤ용의 입을 벌리고 그 안에 철을 박아넣어 저 먼 하늘로 날아 올라갈 용을 쏘아 떨어트리겠다고 말하는 오만한 남자가 있었다.

ㅤ짙은 남빛이 도는 비늘과 옅은 분홍으로 빛나는 혓바닥, 피보다 밝은 붉은 눈과 세상 그 무엇보다 큰 무기가 될 이를 가진 용이 하늘로 오르기 전에 쏘아 트려 떨어트리겠다고 말하는 남자는 직접 용의 아가리로 걸어 들어가기로 했다. 남자를 아는 이들은 말했다. 그래봤자 개죽음이라는 결과만 나게 될걸. 또 다른 이는 입에 술병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내기하자. 이 녀석이 시체로 돌아올지, 장기 몇 개 빠져서 돌아올지.

ㅤ오가는 괴팍한 소리에도 그는 조용히 자신이 쥔 소음기를 손수건으로 닦았다.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기 고급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물건은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느낌을 자아냈고 남자는 총을 제 허벅지 위에 올린 뒤 이번에는 안경을 닦았다. 유약하기 짝이 없는, 이곳과는 동떨어진 다정을 담은 부스스한 베이지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본디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모두가 받았음에도 그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그러한 잡담은 불온한 사치.

ㅤ그렇지만 네가 정말 성공한다면 우리 조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진. 제 이름을 부르는 이를 보며 남자는 눈을 찡그렸다. 그가 유독 자신을 가엾게 여겼음을 알았지만, 말단에 불과한 이에게 이러한 말을 하는 것조차도 기만이라는 걸 그는 알까. 허나 자진하여 용의 똬리로 들어가기로 했으니 그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인다.

ㅤ네온사인이 켜진 홍콩의 거리에서 복종은 미덕이오. 순종은 당연지사. 밤이 내려앉으면 머리 검은 짐승들은 저마다의 발톱을 숨기곤 한다. 말끔히 닦인 안경을 다시 쓰는 남자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았기에 그는 다시금 자신의 과거를 곱씹는다.

ㅤ야차를 처음 만났던 날, 그는 가진 것을 전부 잃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남자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제 부모가 죽었을 때였다.

ㅤ검은 연꽃의 명名을 받고 세상에 난 남자의 부모는 황룡이 가진 뜻과는 다른 이치를 가진 이들을 따라 살고 있었으나 남자의 삶은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 헤이렌. 다정히 자신을 불러주던 목소리를 남자는 여전히 기억했다. 아들, 도망쳐! 목이 꿰뚫리면서까지 자신에게 외치던 다급한 목소리 또한 남자는 기억했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무너져가는 간판이 매달린 영화관 속, 오래된 싸구려 무성 영화에도 나오지 않을 법한 인생으로 추락하게 된 날을 그는 기억한다. 일평생 그가 살면서 맛보지 않아도 될 오만과 절망을 받게 된 날. 부모님이 죽고 세상에 홀로 남은 날. 황룡의 심기를 건드렸기에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았던 날.

ㅤ그날을 남자는 정확히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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ㅤ“이 녀석도 죽일까요, 룽쉐님?”

ㅤ문을 열자마자 보인 검정과 하양과 빨강의 뒤섞임. 익숙했던 집에서는 항상 나던 포근한 향 대신 코를 찔러 머릿속에 침투해 모든 신호를 붉게 물들이는 냄새가 풍겼다. 역하고 구토가 치미는 냄새. 향이 먼저였고 그림이 다음이었으며 소리가 마지막이었다. 충격으로 굳어버린 머리는 어떻게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도망쳐. 헤이렌의 부모가 남긴 유언은 그러했다. 도망쳐. 도망쳐. 도망쳐! 사람이 극한의 공포에 도달하면 머릿속에 무엇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하던가.

ㅤ머리채를 잡힌 채 들려있는 왼쪽 뺨에는 벌써 멍이 들 자리가 붉게 자리 잡고 있었고 도망치려던 몸은 뒷덜미를 잡히고 난 뒤 바닥에 내던져진 충격으로 굳어 있었다. 생리적인 고통에 눈물이 맺힌 시야의 끝자락. 부모님은 이미 목숨이 끊긴 뒤였다. 급하게 병원에 모신다 한들 살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익숙한 작업장인 것처럼 좁은 집 안에 모여있는 대여섯 명의 장정들과 그사이 있는 고상한 사람 하나. 머리는 검고 손은 붉은 짐승 새끼들의 우두머리는 그를 잠시 바라봤다.

ㅤ아, 이렇게 죽는구나. 눈을 감고 현실을 바라보지 말아야 하거늘 그는 그러지도 못했다. 머저리 같은 눈동자는 제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여과 없이 전부 담고 있었다. 참상. 비극. 시련. 어떠한 단어를 붙여도 형용할 수 없는 깊디깊은 절망. 정말 이리 목숨 다하여 죽는구나 싶었다.

ㅤ“그냥 두거라.”

ㅤ허나 들려오는 말은 의외의 자비가 담겨있었다.

ㅤ“숨 쉴 힘도 없는 피라미 하나 살린다고 개천에 용이 나겠어.”

ㅤ숨 쉬어보지 그래? 붉게 올라온 뺨을 긴 손톱이 툭툭, 물건 건드리듯 건드렸다. 마치 한낱 필멸의 목숨을 잡고 주무르는 신의 것처럼 자비로운 손길. 제게 침을 뱉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않으매 극명한 혐오감이 뒤섞인 하얀 눈동자. 새하얗기만 한 것 안에 삿된 붉은 것이 검은 선글라스 너머로 비친다. 손을 내리고 곁을 지나친다.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우아하고 고혹적인 손짓으로 그는 제 주변의 조직원들을 물렸다. 굳이 힘을 쓸 필요는 없다는 손짓. 저거 하나 살린다고 내가, 우리가, 조직이 죽어 나갈 일 따위 전혀 없다는 태도. 오만하리만치 거만했고 거만한 만큼 잔인했다.

ㅤ햇빛이라곤 하나 없는 밤임에도 그는 고풍스러운 레이스가 달린 검은 양산을 피는 조직원의 모습. 그날 홍콩에는 비가 오지 않았으나 해도 뜨지 못하는 밤에 그는 가로등 불빛 아래 그림자로 스몄다. 다만 그런데도 선명히 보이는 붉은 눈. 분명 건실하지 못한 이들 사이에 섞여 있는 한 떨기 장미와도 같은 외모. 가시 속 피어난 미薇를 인간으로 형상화하자면 그것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ㅤ“모자란 부모의 잘못을 자식이 뭣 하러 짊어져야 하나.”

ㅤ기어코 그는 끝까지 제 앞에 놓인 봉오리 채 피지도 않은 여린 꽃을 짓밟아야 속이 풀리는 족속이었다. 저건 두고 이만 갈까. 야차의 얼굴을 한 박쥐는 곱게도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네, 가시죠, 룽야오님.

ㅤ검은 차의 시동이 걸리고 떠나는 소리. 여전히 남아있는 진하고도 깊은 피의 향. 총소리와 비명을 듣고도 여전히 죽은 것 마냥 조용한 이웃들. 황룡이 기르는 박쥐가 피를 몰고 다니는 것은 모두가 알았다. 그러니 모두 조용했다. 헤이렌조차도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충격이 모든 감정과 눈물과 정신을 제 몸속에서 다 쳐내 무엇도 하지 못했다. 무엇도. 그 무엇도.

ㅤ해가 뜨고 제 일자리로 출근하러 나오던 사람들의 비명이 그를 깨웠다. 구급대원들과 경찰이 들이닥치고 누군가 자신을 일으켜 세우며 이름을 불렀지만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어찌 시간과 상황이 흘렀는지 하나 모른다 싶어졌을 때 안치소에서 하얀 천에 덮인 것을 가리키며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하는 장의사의 말에 정신을 차렸던 것 같다.

ㅤ목 뒷구멍까지 찔려오는 포르말린 냄새와 구역질 나는 피와 살덩이의 비린내. 더러운 천에 노끈으로 감긴 시체를 마주하고 난 뒤, 진 헤이렌은 난생처음으로 가능키만 한다면 당장 그 자리에서 혀 깨물고 죽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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ㅤ3일 밤낮에 걸친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 진 가족이 살던 집의 우편함 안에 무언가 들어있었다며 집주인이 건네줬다.

ㅤ[조의금]이라고 적힌 검은 한자와 갈색 봉투. 안에 들어있는 지폐의 개수는 30장을 쉬이 넘어갔다. 보낸 이는 없었어도 봉투 한구석에는 용이 그려져 있었기에 진 헤이렌은 그대로 주저앉아 답지 않게 이를 악물었다. 꼴에 인간의 도리는 지키겠답시고 보낸 것은 부모의 장례 값. 떠나보내는 것 정도는 호화스럽게 하라는 듯, 제게 건네진 이 돈을 보는 순간 온갖 치욕과 욕설이 치밀어올랐다. 깜빡이는 것들. 점멸하는 것들. 마지막 남은 두려움조차 사라지니 새하얀 눈 안에 담기는 것은 오랫동안 축적해온 약점.

ㅤ눈물이 일었다. 지폐 몇 쪼가리에 무너지고 일어나는 삶이라고들 하지만 어쩜 이렇게까지 잔인한 노란색이 존재할까. 미처 슬픔을 떨쳐내기도 전에 파도처럼 휘몰아치는 것을 떨칠 수가 없어 그제야 진 헤이렌은 한참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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ㅤ결국 남자의 이야기는 홍콩 골목골목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똑같았다. 조직들의 패싸움으로 부모가 죽고 홀로 남은 자. 갈 곳 없던 그를 자기 부모와 알던 조직원이 거둔 뒤 복수귀로 키워낸다. 고리대금 징수에 협박은 기본이요, 총기 밀수와 불법 물자 반입은 밥 먹듯 한다. 살인은 그나마 피했다 하지만 그걸로 과연 충분할까. 뒷세계의 대다수는 도량이 작고 독하지 못해 군자도 대장군도 되지 못한다. 독한 새끼는 살아남다 가도 죽는다. 엔간히 해서는 살아갈 수 없는 곳이다. 옛말에 틀린 건 하나 없다지.

ㅤ사정을 들어봤자 모든 게 뻔한 시놉시스에 스토리며 그런 사실로 특별 취급 받는 이는 없었다. 홍등 속 촛불 꺼지고 자신을 스스로 불태우기 바쁜 네온사인만이 벽과 하늘을 지배하는 밤.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완차이 구의 골목에는 관광객들이 종종모이곤 했지만, 밤이 되면 그곳을 지배하는 것은 용과 호랑이와 표범과 각종 동물의 이름을 매달고 활개 치는 짐승들. 서로를 물고 뜯고 싸우기 바빴던 이들의 사이로 거주민들의 일상이 엮이는 것은 다반사다. 누구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않는다. 그렇게 남은 이들이 마지막으로 정착하는 곳이 결국 짐승들의 소굴 안이었을 뿐이니까.

ㅤ종국에는 모두가 서로의 목을 노렸다. 헤이렌 또한 그들과 별반 다르진 않았다. 유약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그는 제 동료들에게 얕보이지 않기 위해서 혈향을 몸에 두르고 거리를 활보했다. 총과 칼이 아닌, 머리와 이빨과 몸속 장기조차도 무기이자 패가 될 수 있는 무법지대. 그곳에서 그는 오로지 살아남겠다는 일념 하나로 고개를 쳐들고 총을 쥐었다. 복수는 과분한 것이고 사념은 생존에 방해가 될 뿐. 일찌감치 포기했던 것들이다. 허망이 보낸 분들이었지만 복수라는 것을 다짐할 힘은 제게는 없었다. 그러니 단지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가고 있었는데.

ㅤ“들었나, 황룡회의 장 대인이 죽었다 하더군.”

ㅤ5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황룡회의 산주이자 우두머리가 죽었다 한다. 지혜로웠던 늙은 황룡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도 잠시- 사람들은 곧 그 후계가 될 이에 대한 소문을 입에 올리곤 했으나 지병으로 별세한 용의 다음 후계는 금세 정해졌다. 메이 룽쉐梅荣血. 영광스럽고도 합당한 장 대인의 후계. 피를 머금고 폭력을 두르고 자라나 합당한 자신의 자리를 가진 황룡의 후계자.

ㅤ검은 양산을 들고 짙은 감색과 그에 대비되는 옅은 분홍의 머리카락이 굽이치던 제 꼬꾸라진 인생의 원흉이 이제는 탈피를 끝맺고 하늘로 승천하겠다고 하였다. 새빨간 눈과 날카로운 이를 가진 그를 보고 사람들은 야차라 불렀으나 진 헤이렌은 그를 여전히 구렁이 새끼라 생각하였다. 몸집을 아무리 키워봤자 지금은 막 탈피가 끝났을 시기. 가장 약하고도 연약한 시기에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하는 괴물 하나를 쏘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려울까. 설령 고난이 예상된다 한들 그 비늘이 자라고 날개가 펼쳐질 때는 이미 늦을 때. 머리를 박고 간절히 부탁하며 제 목숨을 담보로 맡겨 자리 하나를 얻어낸다. 황룡회의 신입. 용의 모가지를 잘라내 비틀기 위한 첩자. 자진하고 애원하고 비굴하게라도 얻어낸 그 자리 하나를 위해 살았나 싶어지게 되는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ㅤ지금이 아니면 그를 죽일 수 없다. 용이 하늘로 치솟고 나면 때는 늦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그가 하늘과 땅을 지배할 준비를 하며 몸을 잠시 움츠리는 때를, 하나뿐인 순간으로 그 숨통을 끊어야만. 그는 죽어야만 한다. 그를 죽여야만 한다. 복수를 포기하고 이 바닥에 뛰어들었으나 오래된 상처를 들추면 어떤 짐승이든 이를 드러내는 법이다. 다만 그는 우선 몸을 숙였다. 우습게도 살면서 마지막으로 주어질 기회가 손에 쥐어지자 간절했다. 야차라 불리는 저 자의 죽음이 간절했다.

ㅤ그 일념 하나로 진 헤이렌은 허리춤에 총을 차고 황룡회의 말단 신고식을 견뎠다. 저 멀리 앞에 보이는, 검고 노란 비단길 위에서 멋들어진 검은 코트를 걸친 아가씨. 저와 다를 것 없이 유약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이가 모이는 말단들의 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유달리 날카로운 송곳니와 길고 잘 관리된 손톱. 무기라기엔 보잘것없는 이와 손이 전부임에도 메이 룽쉐는 그것들로 황룡의 자리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사실에 조금은 아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처음부터 입안에 복수를 머금고 살걸.

ㅤ제 수하들의 수를 보고 흡족히 미소 짓고 있는, 이무기로 여겨지는 박쥐가 탈피를 시작한다. 피를 두르고 시체 위를 첨벙이는 변덕스러운 구렁이가 용이 되려 고개를 쳐들 때 모가지에 달렸을 역린 하나. 붉은빛으로 빛날 그 비늘 하나만을 노리면 된다.

ㅤ저것이 하늘의 용으로 거듭나기 전에 나 기어코 구역질 나는 땅바닥 야차의 숨통을 끊으리라.